쇼코의 미소 - 최은영 세번재서랍






1


"기억은 재능이야. 넌 그런 재능을 타고났어."

할머니는 어린 내게 그렇게 말했다.

"하지만 그건 고통스러운 일이란다. 그러니 너 자신을 조금이라도 무디게 해라. 행복한 기억이라면 더더욱 조심하렴. 행복한 기억은 보물처럼 보이지만 타오르는 숯과 같아. 두 손에 쥐고 있으면 너만 다치니 털어버려라. 얘야, 그건 선물이 아니야."

하지만 나는 기억한다.

불교 신자였던 할머니는 사람이 현생에 대한 기억 때문에 윤회한다고 했다. 마음이 기억에 붙어버리면 떼어낼 방법이 없어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법이라고 했다.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떠나도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, 애도는 충분히 하되 그 슬픔에 잡아먹혀 버리지 말라고 했다. 안 그러면 자꾸만 다시 세상에 태어나게 될 거라고 했다. 나는 마지막 그 말이 무서웠다. 

시간은 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.

(최은영, 쇼코의 미소, p.164)



2



나는 쓰레기통 앞에 가만히 서서 한지가 조금 전까지 서 있었던 자리를 바라봤다. 한지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았다. 한지는 이제 나를 피하고 있고, 내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건 한지를 괴롭히는 일이 될 것이었다.

나는 그애를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.

내가 어떻게 사과를 하든, 어지된 일이냐고 따져 묻든 그건 모두 잘못된 일이었다.

사람들은 떠난다.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었다.

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돼.

나는 나에게 속삭였다.

(최은영, 쇼코의 미소, p.166)



3



"한지가 이걸 읽을 수 있었어?"
"아니"

테오는 아무 표정도 읽을 수 없는 얼굴로 내게 노트를 건넸다.

(최은영, 쇼코의 미소, p.180)



4



나는 노트를 둥그렇게 말아서 얼음을 캐낸 구멍 안에 넣고 깊이 밀어낸다. 노트는 별다른 저항 없이, 미끄러지듯 얼음 속으로 떨어진다. 그것은 적어도 일만 년간 썩지 않을 것이다. 나는 그 시간 동안 거듭해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. 그 기억들이 나를 떠나 이 얼음에 붙기를.

(최은영, 쇼코의 미소, p.180)

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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